송재환, <초등 1학년 공부, 책읽기가 전부다>, 예담, 2013.
13. 공부는 책읽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어디 공부뿐이겠는가? 책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대체로 심성이 곱다. 책을 읽다 보면 자꾸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감성이 풍부해지며 인성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책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친구 관계도 원만하다. 사고의 폭이 넓고 깊으며 입장을 바꿔서 생각할 줄 알기 때문이다.

20-21. 누군가 필자에게 "초등학교 1학년이 왜 중요한가?"라고 묻는다면 서슴없이 이렇게 답할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은 자아정체성이 형성되는 결정적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부모에 의해 자아정체성이 형성된다면 입학 후에는 교사에 의해 형성된다. 교사가 아이를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아이의 자아정체성은 긍정적으로 형성될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형성될 수도 있다. 특히, 초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이 어떻게 보느냐는 아이의 자아정체성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1학년 때 선생님이 어떤 아이를 문제아라고 보면 이 아이에게는 6학년 때까지 문제아라는 딱지가 붙어 다닌다. 반대로 1학년 때 선생님이 어떤 아이를 모범생으로 보면 그 아이는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졸업할 때 빛나는 졸업장을 받는다. 이처럼 어느 특정한 시기에 어떤 꼬리표를 붙이느냐에 따라 그 이후의 삶이 달라지는 것을 '낙인 이론Labeling Theory'이라고 한다. 낙인 이론은 1960년대 미국에서 등장한 이론으로 사회가 어떤 구성원에게 꼬리표를 붙이는 행위를 뜻한다.

22-23. 대개의 아이들은 어휘력이 부족하고 지나친 선행학습을 하는 바람에 수업시간에 산만해진다. 어휘력이 부족한 아니는 일단 교과서를 읽어도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모르는 어휘가 많이 나오는 교과서가 재미있을 리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과서를 멀리하게 된다. 수업은 교과서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교과서가 싫어지니 자꾸 교사에게 지적을 받게 된다. 좋지 않은 낙인이 자꾸 찍히는 것이다. 또한 이런 아이는 교사의 설명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교사가 열 마디를 하면 아홉 마디는 이해해야 하는데 예닐곱 마디밖에 이해하지 못한다. 부모 마음 같아서는 이해를 못하니 더 귀를 기울여서 들었으면 좋겠는데 아이 입장에서는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니 딴 짓을 할 수밖에 없다. 교사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니 교사가 지시한 대로 활동을 할 수도 없다. 그러다가 본의 아니게 엉뚱한 짓을 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교사에게 자꾸 지적을 당하면서 좋지 않은 낙인이 찍힌다. (중략) 선행학습을 열심히 하고 들어온 아이들은 대채 학년 초에 반짝하다가 만다. 지적 호기심이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는 굉장히 신기한 곳인 줄만 알았는데, 자기가 아는 것만 가르치는 별 볼일 없고 따분한 곳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미 자기가 다 아는 내용만 배우다 보니 수업시간이 전혀 흥미롭지 않다.

24. 수업 시간에 산만한 태도만큼이나 교사한테 좋지 않은 낙인이 찍히는 건 기본 생활 습관이 엉망인 경우이다. 교사 입장에서는 1학년 아이가 인사를 잘하고, 자기 자리 정돈을 잘하며, 밥만 잘 먹어도 예쁘기만 하다. 하지만 이런 기본 생활 습관이 제대로 든 아이는 몇 명 되지 않는다.

26. 명심보감 '성심편'(省心篇)에 다음 구절이 나온다. "하늘은 복 없는 사람을 내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기르지 않는다."

29-31. 사람의 키는 아무 때나 자라지 않는다. ... 어휘력도 마찬가지이다. ... 어휘력이 폭발적으로 느는 시기가 있다. 바로 초등학교 시절이다. 캐나다의 언어학자 펜필드Wilder Penfield는 '결정적 시기 이론Critical Period Theory'을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동기는 생애 중에서 어휘 습득이 가장 왕성한 시기이다. 이때 습득한 어휘는 성인이 되어 원활한 독서와 청취는 물론이고, 생각과 의사를 글로 쓰고 말로 표현하는데 사용된다. 아동기 이후 어휘 습득은 생물학적 제약을 받아 둔화된다. 따라서 어휘량이 풍부하고 좋은 어휘를 사용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아동기 독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펜필드의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해줄 만한 자료로는 일본의 교육 심리학자 사카모토 이치로阪本一郞의 '아동 및 청년의 어휘량 발달표'를 참고할 만하다. 이 표에 의하면 태어나면서부터 7세까지 어휘량의 증가 속도는 한 해에 500단어 내외 정도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 시기인 8세부터 증가 속도가 확연히 달라진다. 10세 전후로 매해 5,000단어 정도씩 증가한다, 습득 어휘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이른바 어휘 폭발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1년에 5,000단어를 습득하려면 하루에 15단어 정도를 습득해야 한다는 산술적인 계산이 나온다. 실로 엄청난 양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머릿속에 저장된 어휘만큼만 이해하고 생각하며, 이해하고 생각한 만큼만 느낄 수 있다. '어휘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이렇듯 중요한 어휘량은 초등학교 시절에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초등학교 1학년은 그 폭발의 시작점이다.

33-34. 영어 유치원을 다녔던 아이들이 어휘력 빈곤에 시달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보통 영어 유치원에서는 우리말을 쓰지 못한다. 영어 유치원에 다니면 평균 하루에 6시간 정도 우리말을 듣지 못하고 우리말로 말하지 못한다. 1년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수천 시간 동안 우리말을 쓰지 못하는 꼴이다.

42. <습관의 힘>에는 '핵심 습관'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핵심 습관은 개인의 삶에서 연쇄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습관을 의미한다. 핵심 습관의 가장 좋은 예는 운동이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운동하는 습관이 생기면 삶의 패턴은 획기적으로 바뀌게 된다. 운동을 하면 음식을 절제하게 되고, 담배를 줄이게 되며, 지구력이 향상된다. 또한 충동을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 쇼핑 충동 등도 더 쉽게 억제된다. 운동이라는 핵심 습관이 연쇄 반응을 일으켜 많은 것들을 좋게 변화시키는 셈이다.
by bluemoses | 2017/03/12 18:02 | 트랙백
Nick Davies(2000), 이병곤(역), 《위기의 학교 The School Report》, 우리교육, 2007.
지난해(1999년) 《가디언》은 교육기준청이 주관하는 학력 평가에서 수많은 학교들이 부정행위를 했다고 보도했다. (중략) 표준 성취도 검사는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학교 간 성적 순위표를 작성할 때 원천이 되는 자료이다. 비록 이 검사 점수가 학교의 정확한 학력 수준이나 실태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장차 입학을 지원하는 학생 수와 학교 재정 지원금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학교의 성공 여부를 가름하는 주요 지표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여기에 블런켓 장관이 2002년까지,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11세 학생들의 성취도 비율이 원래 교육과정 목표치인 '수준4'의 영어 80퍼센트, 수학 75퍼센트에 이르지 못하면 장관직을 사임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이 같은 압력은 더욱 강화되었다.(228~229)

마치 육상 선수들 사이에 존재하는 스테로이드처럼, 이 같은 부정행위는 학교 현장에 만연되어 있다. 만약 어떤 교사가 부정한 방법으로 성적을 높였다면, 정직한 다른 교사는 더없이 무능해 보일 것이고, 교육부의 새로운 노선을 따라야 한다는 압력을 전보다 더 많이 받게 된다. 경찰 역시 내무부의 압력 때문에 비슷한 열병을 앓아 왔다. 지난 1999년 《가디언》과 《채널 4》의 심층 보도 프로그램인 <디스패치 Dispatches>가 폭로한 바와 같이, 전국 43개 지역 경찰청 가운데 범죄 발생률과 검거율을 조작하지 않은 곳은 단 4곳뿐이었다. … 수치를 조작해서 이득을 얻고 있는 다른 지역 경찰청과 경쟁해야 한다는 압력은 거의 불가항력이었다.(235)

우리 교육 체제에서 유급제도의 부재와 상대평가의 결합은, 단순히 학업 실패를 방치하는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학업 실패를 조장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구조적으로 학업 실패를 양산해낼 수밖에 없는 교육 체제를 만들어 관리해 오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한 채, 도리어 학업 실패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 결과 이 같은 구조적인 결함이 만들어 낸 학업 실패로 인해, 아이들만 정서적으로 상처를 받고 진로에서의 좌절을 맛보고 있다.(264~265)

네덜란드에 있는 초등학교에서는 모든 학생들에게 기본 단위의 교육 예산을 지급하지만, 부모의 교육 수준이 낮은 가정의 자녀들에게는 기본 단위의 1.25배를 지급한다. 또 선원의 자녀는 1.4배, 이민자나 부랑자의 자녀들은 1.7배, 교육을 받지 못한 소수 인종의 자녀들은 기본 단위의 1.9배를 받는다. 여기에는 지역 차이도, 시스템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예외도 없다. 이것이 교육 예산의 핵심을 이룬다. 이에 더하여 중등학교에서는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보다 직업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학생들에게 더 많은 교육비를 지원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실습실을 청소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이다. 네덜란드의 전형적인 중등학교에서는 직업교육을 받는 학생에게 135만 원의 교육비를 투자하는 반면,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에게는 많아야 40만 원 정도의 교육비만 지원하고 있다. 우파들은 필요에 따른 재정 지원 방식을 혐오한다. 그런 정책은 한 개인의 학업 실패를 공적 자급으로 보상하는 것이며, 나아가 공부를 잘하는 중산층 아이들에게 쏟아 부어야 할 돈을 가난한 아이들에게 퍼 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덜란드 사람들은 협상을 통해 그런 정치적인 격랑을 헤쳐 왔고, 이제 교육 소외가 세대를 거듭하며 세습되는 현상을 극복했다는 실질적인 증거를 보여 주고 있다. 네덜란드 교육부 장관의 발표에 따르면, 부모의 교육 수준이 낮아 기본 단위의 1.25배의 재정을 지원받은 수혜 대상자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265~266)

감히 드러내 놓고 말하기조차 망설였던 하나의 도전적인 생각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선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자는 말이다. 영국 교육에서 선발을 통한 진학 시스템은 하나의 악몽과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국의 어린 학생들은 열한 살 때 치르는 단 한 번의 시험 결과로 중등학교에 배정되었고, 일단 진학할 학교가 정해지면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는 가능성조차 거의 없었다. 또한 이는 가장 성적이 뛰어난 아이들에게만 충분한 자원이 공급되는 불공평한 체계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계급 정치에 의해 엉망이 되었고, 그 결과 이류 학교라는 덫에 걸려든 아이들은 빈곤 계층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네덜란드 교육 체제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영국에서 엘리트주의와 동의어로 취급되는 바로 그 선발 제도를 통해 엘리트주의에 빠지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는 점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선발이라는 제도는 사회 정의를 위한 의식적인 실천이었다. 선발 제도가 평등한 교육 기회를 부여한다는 위장된 역설을 통해 네덜란드인들은 완벽하지 않지만 원칙상 받아들여질 만한 나름의 방식을 고민했던 것이다. 실제로 그들이 실행해 온 선발 체제는 학습자들의 필요에 근거한 교육을 제공한다는 그들 시스템의 논리적 결과물이다. 직업 교육과정을 선택한 네덜란드 학생들은 전체 수업 시간의 절반 이상을 실습 과목에 열중한다. 이 점에서 대학입시 준비 과정에 있는 학생들과 구분된다. 그런데 시간표의 나머지를 이루는 지식 교과에서도 그들은 대학입시 준비 과정에 있는 학생들과 다른 수업을 받는다. 직업교육을 선택한 학생들이 성적이 뛰어난 대학입시 준비 과정에 있는 학생들을 위해 그저 들러리 서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맞는 학습 속도로 학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학업 능력에 차이가 있는 학생들은 교육받는 경로가 분리된 상태로, 같은 학교 안에 공존한다. 여기서 문제는 이 체제가 영국에서처럼 자의적이고 융통성 없이 이류 학교를 양산해 내는 선발 체제로 다시 귀결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 질문에 대해 먼저 답하면, 네덜란드인들은 이 문제를 거의 완벽하게 해결했다. 모든 네덜란드 어린이들은 선발을 거치지 않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1년 정도 유급된다. 이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시험을 보는데, 이 시험은 과거 영국에서 실시한 일레븐 플러스 시험에 비해 훨씬 정교하다. 지능과 학업 성취도를 측정한 뒤 교사들은 문서로 된 평가서를 작성하는데 이때 충분한 토론이 이루어진다. 그런 다음 교장은 학부모와 면담을 하고, 중등학교에 보낼 추천서를 작성해준다. 아이들이 중등학교에 진학하면 4가지 경로에 따라 공부하는 과정이 나뉜다. 이 아이들은 모두 같은 교재로 15개 교과를 공부하는데, 다만 학습 수준과 속도에 따라 4가지 경로로 나뉜 것이다. 각 과정은 2년간 지속되는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 내린 평가가 잘못된 것으로 그러나면 학년 말에 다른 과정으로 전환시켜 준다는 점이다. 이때 25퍼센트에 가까운 학생들이 과정을 바꾼다. 2년 뒤, 4개 과정은 다시 서로 다른 교육과정으로 세분화된다. 15퍼센트의 학생들은 가장 학습량이 많은 4년제 인문 교육과정으로 편성된다. 25퍼센트의 학생들은 학습량이 약간 적은 3년제 과정을 이수한다. 45퍼센트의 학생들은 일부 실용적인 직업 훈련이 포함된 2년제 인문 교육과정에 편입되며, 나머지 15퍼센트는 일부 인문 교과가 포함된 2년제 직업 교육과정에서 공부한다. 이 체제의 유연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요소는, 학생들이 위의 4가지 경로 가운데 직업 교육과정을 마치고 수료증을 받은 뒤에, 본인이 좀 더 학문 중심의 교육과정으로 옮겨서 더 배우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중등학교 과정을 지속할 수 있다는 데 있다. 5퍼센트의 학생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즉, 영국의 낡은 선발 체제는 학생들을 특정한 과정에 붙잡아 두는 반면, 네덜란드에서는 여러 과정 사이를 옮겨 다니도록 권장하고 있다. 네덜란드 학교에서는 학업에 실패한 아이들을 직업 교육과정을 통해 학교에 끌어들여 자기 수준에 맞는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도록 한 다음, 좀 더 높은 수준의 과정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 북동부 그루트브뢰그 지역에 자리한 마르티누스 칼리지 교장 J. J. 몰리나르 박사는 “이것이 빈곤층 아이들을 이끄는 구조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중요한 통계 하나를 살펴보자. 가장 학력이 떨어지던 학생들의 94퍼센트가 직업 교육과정을 마치고, 수료증을 받기 위한 6개 교과 시험에 합격했으며, 이 가운데 일부는 인문 교과였다. 영국의 놀라운 실패율과 비교해보자. 이런 결과는 시험 문제가 쉬워서 얻어진 것이 아니다. 화장실에 배선을 놓는 일은 라틴어를 익히는 일보다 결코 쉽지 않다. 윔 메이즈넌 교수는 “네덜란드에는 숨은 재능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선발 체제가 자의성과 경직성을 극복하더라도, 여전히 교육받는 아이들을 두 계층으로 분리하는 역할을 담당하지는 않을까? … 이러한 낙인 효과를 줄이기 위해 네덜란드 사람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가운데는 문화적인 방법도 있었다. 몰리나르 박사가 들려준 이야기는 상식을 지향하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뛰어난 감수성을 보여 준다. “우리 일생에서 변호사가 필요한 경우는 한두 번뿐입니다. 하지만 빵 만드는 기술자는 날마다 필요하죠.” 또한 이들은 사회적인 방식으로 풀기도 한다. 학교에서 소풍을 가거나 연극을 무대에 올릴 때 서로 다른 과정을 밟는 학생들이 모두 함께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낙인 효과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안은 학습자의 필요에 바탕을 둔 교육 정책에 있다. 즉 직업 교육과정에 더 많은 재정을 지원한 것인데, 이를 통해 직업 교육과정을 밟는 학생들에게 더욱 강한 자기 존중감을 심어 주고 성공을 위한 실질적인 기회를 주며, 그 결과 학부모와 기업체 고용주들 모두가 직업 교육과정을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최근 네덜란드의 교육부 장관은 학력이 가장 낮은 두 과정을 통합하고, 학생이 원할 경우 더 많은 인문 교과를 공부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학생들의 자기 존중감을 더욱 높여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266~269)
by bluemoses | 2017/01/13 12:02 | 트랙백 | 핑백(1)
김종엽, 「지구적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교육개혁의 길」, 『창작과비평』, 2016 가을호, 96~121쪽.

우리는 매순간 현재를 살아가지만, 과거는 경험을 통해, 미래는 기대를 매개해서 현재로 스며든다. 현재는 경험과 기대가 교차하는 순간인 것이다. 경험과 기대는 서로를 조건짓지만 둘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만일 경험이 기대를 완전히 결정하면다면, 미래는 닫힌 것이 되며, 그 경우 삶은 권태의 지속 또는 탈출구 없는 지옥이 될 것이다. 반대로 미래가 너무 개방적이어서 경험으로부터 어떤 기대도 끌어낼 수 없다면, 우리는 불안에 빠질 것이다. 그러므로 경험과 기대가 빈틈없이 결속된 상태나 아무 연계 없이 분리된 상태는 좋은 삶의 조건이라 할 수 없다. 경험과 기대라는 켤레 개념으로 우리 사회를 조망하면, 한때는 경험과 기대가 발전주의 프로젝트를 통해 적절히 연계되었지만, 그 잠재력은 이제 소진되었다. 하지만 경험과 기대를 연계할 새로운 집합적 프로젝트는 형성되지 않았다. 그 결과 지금 우리는 경험/기대 연관의 붕괴 상황에 있다는 느낌과, 경험과 기대가 간극 없이 봉합된 상황을 동시에 체험하고 있다.(96~97)

이글에서는 현재 우리사회가 처한 문제를 세계체제론의 일환으로 발전된 세계도시이론에 입각해 분석해보고자 한다. 그런 구상에서 매우 중요한 거멀못이 교육이라는 것이 이 글의 판단이다. 따라서 그런 판단에 입각해 공간적인 재편을 염두에 둔 교육개혁론을 제기해볼 것이다.(98)

만약 어떤 도시가 세계적 규모의 자본축적 중심지, 즉 세계도시의 역할을 한다면, 어떤 기업들이 집결할지 추론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다국적 생산자본의 헤드쿼터가 자리잡을 것이고, 생산자본을 지원할 분 아니라 다양한 축적 메커니즘을 가동하는 대형 금융회사가 모일 것이다. 그리고 이들 모두를 지원하는 생산자 서비스 회사(대규모 회계법인, 부동산회사, 국제적 로펌, 디자인과 광고 전문 회사, 시스템 솔루션을 제공하는 전산서비스 회사 등)가 응집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고용된 인구를 지원하는 소비자 서비스 제공업체(거주용 아파트와 사무 빌딩 관리회사, 그리고 세탁소, 주차관리원, 식당, 택배회사, 버스회사, 자영업 택시 등에 이르기까지)가 모여들 것이다. 만일 대형 금융과 산업적 헤드쿼터가 높은 이윤율을 가진다면, 그것을 운영하거나 소유한 전 지구적 부르주아와 그들을 지원하는 테크노크라트를 위해 도시는 높은 수준의 의료 및 교육 시설을 구비할 것이며, 그 옆에 대학과 연구소는 물론이고 극장과 박물관도 들어설 것이다. 그런 시설에 연구자와 학생, 악단과 무용단이 모이고, 거리의 악사와 초상화가도 따라붙을 것이다. 보헤미안적 생활양식을 가진 예술가 거주지역도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집단 틈새엔 단순 노무인력이 끼어 활동할 것이다. 이런 과정은 브로델(F. Braudel)이 말한 전망의 상호성”, 그러니까 상대편이 자신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기대의 상호성에 힘입어 자기조직적으로 진행된다. 그렇게 해서 역시 브로델이 말했듯이 도시는 일종의 변압기처럼 작동한다. 주변으로부터 필요한 자원을 빨아들이며 내부를 엄청난 에너지로 충전하는 것이다.(99~100)

회계법인과 은행업의 분포를 중심으로 세계도시를 분석해온 피터 테일러(Peter J. Taylor)는 우리의 경험에 부합하게도 서울을 베타-세계도시’(β-World City), 즉 중위 세계도시로 분류한다. 중위 세계도시가 소재한 국가의 경우, 산업적금융적 능력의 한계 때문에 한 개 정도의 세계도시만이 형성 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럴 때도 그 국가의 정치적 수도와 결합함으로써만 세계도시의 수준에 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마 멕시코시티, 부에노스아이레스, 방콕 또는 이스탄불이 서울과 유사한 경우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중위 세계도시는 수위 세계도시와 다른 특징을 지닌다. 중위 세계도시는 중심부 세계도시와 달리 그곳이 속한 국가의 다른 도시들을 완전히 압도한다. 일반적으로 세계도시로의 성장은 국가의 재정능력을 초과하는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편이지만, 중위 세계도시는 거기서 더 나아가 해당 국가 주변부의 자원을 대량으로 흡수하고 착취하며, 그런 한에서 세계도시 지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과 수도권이 나머지 지역으로부터 한해 정부 총 예산의 두 배가 훌쩍 넘는 액수인 약 854조원을 빨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100~101)

중앙정부의 고위 공무원이 퇴직 후 재벌 대기업이나 로펌의 자문 내지 고문 같은 직책으로 취업하고, 그들이 나중에 정부의 선출직 공무원이 되기도 하는 일종의 회전문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중앙정부의 관료들이 국민국가적 충성심을 가지지 않고 관료적 자기이익 추구라는 경로를 따라 상층 지배 블록과 융합하게 되면, 국민국가는 국민적 국가이기를 그치게 되는 것이다. (중략)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민국가가 국민적이기를 요구하는 일, 모든 주민을 동등하게 대우하고 그들의 복지를 균등하게 향상시키려는 가치 지향성을 정부 안에 깊이 새겨 넣는 일이다.(103~105)

지금 우리가 목표로 삼은 바 중위 세계도시 서울의 지배력이 야기한 병리현상의 치유를 위해서도 서울과 수도권의 중심성을 약화시키려 했던 그간의 시도와 그 성과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선 검토되어야 할 것은 참여정부가 추진한 지역균형발전 전략, 특히 그 기획의 중심에 있던 수도이전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공공기관의 지방이전, 그리고 행정수도세종시를 결과로 남겼다. 수도권 중심성 해체를 목표로 내세우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것의 상당한 약화를 함축한 기존의 시도로서 국립대학통합네트워크안이 있다. 이 논의는 참여정부와 연계된 것은 아니었지만 참여정부 시기에 제기되었다. 강준만의 서울대의 나라(개마고원 1996)가 출간된 이후 학벌주의와 대학서열체제에 대한 비판이 활성화되었고, 진보적인 학자들은 서울대 해체와 대학평준화를 주장했으며, 장회익 교수를 비롯한 서울대 교수 20인은 서울대 학부과정 개방안을 내놓기도 했는데, 국립대학 통합안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가다듬어진 것이었다. 이 안은 비록 제도적 결과를 만들진 못했지만 진보정당들은 물론 18대 대선을 앞두고 통합민주당이 교육개혁 방안으로 진지하게 검토하기도 했으며, 여전히 우리 사회 진보개혁진영이 대학서열주의에 도전하며 내놓은 안 가운데 가장 구체성이 높은 것으로 남아있다. 이 글에서 논의하고 싶은 것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제기되고 별도로 추진되었던 참여정부의 수도이전 프로젝트과 국립대학통합안의 결합이다.(108)

참여정부가 시도한 새로운 수도 건설은 당시 야당인 새누리당의 반대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기이한 판결로 인해 행정수도로 격하되었고, 이명박정부는 그마저 특별경제도시로 전환하려 했다. 하지만 당시 박근혜 의원의 대선전략 때문에 행정도시안이 유지되어 922청이 내려가 현재 상태에 이르렀다. (중략) 세종시는 인근에 큰 규모 대학을 품은 세 개의 도시에 둘러싸여 있다. 동쪽으로는 충북대가 위치한 청주시가 있고, 서쪽으로는 공주대의 공주시, 남쪽으로는 충남대와 카이스트가 있는 대전광역시가 있다. 세종시는 이 세 개 도시를 연결하는 허브가 될 만한 위치에 있다. 그리고 청주시는 춘천, 원주, 강릉 소재 대학을 연결하고, 공주시는 전주와 광주, 그리고 목포 소재 대학을 조직하고, 대전광역시는 충남 지역과 경상남북도의 대학을 연계하는 세 개의 2차 허브가 될 수 있다. 강원도 방면의 네트워크를 위해서는 동서 철도망을 보충해야겠지만, 세종시가 중심이 되는 네트워크의 공간적 마찰계수는 그리 높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실제적인 인적 교류가 활성화될 수 있는 것이다. 세종시에 국립대학통합네트워크 본부를 설치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구성해나가는 것은 세종시 자체의 발전방향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런 프로젝트가 의도하는 바는 서울을 핵으로 하는 중심/주변 분화가 야기하는 많은 병리현상을 비수도권을 대변하는 또 다른 중심을 형성함으로써 완화하는 것이다. 이런 의도에 대해 또 다른 중심의 형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중심이 모든 사회적 자원을 빨아들이는 동심원적 사회보다 이심(二心)에 의해 그려지는 타원의 사회가 훨씬 더 역동적일 것이다. 실제로 고등교육의 발전 측면에서 볼 때, 이런 정도의 공간적 응집력 그리고 행정수도에 의해 뒷받침되는 사회적 권력을 가진 국립대학통합네트워크여야 서울 소재 명문대학이 긴장할만한 교육과 연구 역량을 형성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우리는 서울대를 폐지하거나 서울 소재 명문대학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서열 체제에 안주할 수 없게 할 수 있을 텐데, 그것은 결코 서울과 수도권의 약화가 아니라 여러 수준에서 건강을 회복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109~114)

아마도 일각에서는 지금까지의 논의 전반에 대해 더 중요한 당면문제, 그러니까 출산력 저하로 인한 학령인구 급감이라는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대학구조조정 문제를 비껴가고 있다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남아도는 대학정원이 16만명이니 정원 1천명까지 대학 100개가 문을 닫을 일이라는 식으로 조장된 위기는 전형적인 가짜 사건’(pseudo event)이다. 학령인구의 감소가 그렇게 심각한 문제였다면 그들이 대학 입학연령에 이르기 전까지 이미 유치원과 초중등학교가 초토화되었어야 마땅하다.(115~116)

교육에서 벌어지는 일을 데이비드 하비가 말한 공간적 해결의 기능적 등가물로 여겨질 수 있다. 하비는 잉여가치를 추구하는 자본가가 쉬지 않고 생산한 잉여생산물을 흡수하기 위해 자본주의가 공간적 해결을 추구해왔다고 말한다. 이런 공간적 해결의 대표적인 사례로 그는 19세기 중반 오스만(G. Haussmann) 남작의 빠리 대개조, 20세기 중반 로버트 모지스(Robert Moses)의 뉴욕 대도시권 재개발 그리고 엄청난 생태적 문제를 함축하고 있는 21세기 중국의 대규모 도시개발사업을 제시한다. 아마 우리 사회의 경험으로 말하면 22조원을 퍼부은 4대강사업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이 팽창되는 과정도 잉여 자본과 노동을 흡수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공간적 해결에 빗대어 이런 과정을 교육적 해결(Educational fix)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118)

하비는 헤겔의 용어를 빌려 공간적 해결에 입각한 자본축적이 일종의 악무한’(bad infinity)의 성격을 띤다고 말한다. 자본의 확대재생산과 복률성장은 인간의 삶 전체를 통제불능 상태로 몰아가고 생태학적으로 재앙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선무한’(good infinity)에 입각한 단순재생산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120)

산업과 교육을 타이트하게 결합하려는 모든 시도는 뻔하지 않은 기계(non-trivial machine)인 인간을 뻔하게 만들려는 것일 뿐이다. 만일 산업과 교육의 연계를 헐겁게 유지하는 편이 산업에도 더 낫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깨닫는다면, 평가와 선발의 지옥은 한결 연옥에 가까운 것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121)

by bluemoses | 2016/12/19 16:25 | 트랙백
스탠리 하우어워스, 한나의 아이, IVP, 2016.
<우주의 결에 따라>에서 나는 바르트가 기독교적 확신의 묵시론적 성격을 회복한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할 수 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것은 '세상의 모습에 대한 우리의 기술(記述)'이 '세상을 올바르게 기술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와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합리적으로 인정한 것이었다. 바르트는 신학적 진술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을 구성해야 할 기본 문법,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근거한 문법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되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제공해 주었다.(471)

그가 평화의 사람이었던 것은, 우리 감리교도들의 표현을 쓰자면 성화(聖化)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성화가 가리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세상을 구속하셨다는 확신으로 빚어진 습관들’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는군요.(490)
by bluemoses | 2016/10/30 23:09 | 트랙백
김남인, 회사의 언어, 어크로스, 2016.
제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고 '사회적 존재'임을 잊는 순간 여지없이 퇴장당하는 곳(11) '회사의 언어'는 업무 하나에도 다수의 이해관가 얽혀 있고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보폭을 맞춰야 한다는 걸 아는 데서 출발한다.(13)

정신의학자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마크 고울스톤(Mark Goulston)은 사람들이 말할 때도 신호등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신이 맣을 시작한 20초간 상대는 당신에게 그런대로 호감을 품는다. 아직까지는 그린라이트다.(21) 최팀장의 말에서 80은 듣기, 20은 말하기지만 그 20마저도 대부분은 질문으로 채움으로써 상대방의 태도를 꾸준히 그린라이트 상태로 유지한다. 최팀장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결정을 내리고 실행으로 옮겨 일이 '되도록'히는 것이다.(23) 강한 에고(ego)와 달변으로 최고가 된 사람이 있는가?(26)

'애빌린 패러독스(Abilene Paradox)'라는 어려운 얘기도 했다. 미국의 경영학자 제리 하비(Jerry B. Harvey)는 구성원들이 원하지 않는데도 아무도 반박하거나 '노(No)'라고 말하지 않아 울며 겨자 먹기로 합의에 이르게 되는 것을 애빌린 패러독스라고 했다. 그가 외식하러 가자는 장인의 권유를 거절하지 못해 온 가족이 폭염 속에서 냉방도 되지 않는 자동차를 타고 애빌린가지 갔던 일화에서 따온 말이다. 가족들은 고생해서 찾아간 식당에서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식사를 마친 후, "내가 언제 외식하자고 했느냐"며 서로 책임을 전가하기 바빴다는 것이다. 조직에서도 상사 눈치를 보느라, 대세를 거스른다고 찍힐까 봐 합의에 이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대개 '거짓 합의'라고 한다. 이는 업무 수준을 하향 평준화시키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악순환이 계속된다. 새 팀장은 '예스맨이야말로 회사의 독'이라고 강조하면서 회의에서 남의 말에 넋 놓고 고개만 끄덕이지 말고 반박도 하라고 했다. 특히 선배나 상사의 말이 납득되지 않으면 '왜 그런지' 꼭 되물어보라고도 했다.(64)

결론은 하나였다. 이 부장과 말을 섞지 말 것! 언제부터였을까. 이 부장에게는 그 누구도 속내를 보이지 않았다. 신입 사원들도 입사 후 얼마 간은 "부장님, 참 캐주얼하고 재미있는 분이네!"라고 했다가 자신이 부장에게 했던 말을 선배들이 다 알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입을 닫아 버렸다. 대신 고민이 생기면 남 얘기를 하지 않는 송 차장에게 달려갔다. 말이 들어가면 나오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에게는 수많은 정보들이 입력됐다. 그것은 수십, 수백 개의 퍼즐과 같아서 송 차장의 머릿속에서는 회사 내의 여론과 임원들의 내밀한 네트워킹, 회상의 상황 같은 큰 그림이 잡히기 시작했다. 한 사안에 대해서도 다양한 입장과 의견이 종합적으로 그의 귀에 들어오니 누구보다 이해의 폭이 컸고, 이를 바탕으로 판단과 언행이 정해졌다. 기자 시절, 특종 제조기였던 한 선배가 2년 차였던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네가 들은 걸 쉽게 말하고 다니지 마라. 기자가 취재원을 고르듯 유능한 취재원일수록 오히려 그가 기자를 고른다. 떠벌리고 다니면 누가 너한테 값진 정보를 건네겠냐? 무엇보다 말이야, 축적해야 정보가 되는 거야!" 이 부장에게는 회사 내의 고급 정보가 끊긴 지 오래였다. 주위에 남은 사람이라고는 그와 비슷한 부류의 '인간 확성기'와 '빅 마우스'들이었다. 그들끼리도 등만 돌리면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들이 과장과 억측을 덧붙여 재생산해내는 소문들은 스스로 덩치를 키우고는 발이라도 달린 듯 퍼져나갔다. 그들은 섬이었다. 매일 몇 편의 드라마를 찍어 내는 소란스러운 가십의 섬. 조선 영정시대의 걸출한 문인이었던 성대중의 저서 <청성잡기>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내면이 부족한 사람은 그 말이 번다하고, 마음에 주견이 없는 사람은 그 말이 거칠다." 이 말을 한학자인 정민 한양대 교수는 이렇게 풀이했다. "말은 곧 사람이다.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말이 쓸데없이 많은 것은 내면이 텅 비었다는 증거다. 그들은 남들이 혹 자신을 간파할까 봐 쉴 새 없이 떠들어, 인정을 받으려 든다. 줏대가 없는 사람들의 말은 난폭하다. 함부로 떠들고 멋대로 말한다. 그래야만 남 보기에 주견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겠기에 하는 행동이다. 어느 자리에서든 말 없는 사람이 무섭다. 말수가 적을수록 사람값이 올라간다. 침묵 속에서는 함부로 범접하기 힘든 힘이 있다. 말을 아껴라."(106~107)
by bluemoses | 2016/09/30 14:16 | 트랙백
김남준, 마음지킴, 생명의말씀사, 2003.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레니쉬베레 레브, 문자적으로 '마음이 깨어진 자들을 위하여'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다크에 루아흐, 문자적으로 '영이 밟혀 으깨어진 사람들')를 구원하시는도다" _ 시 34:18(189)

어떤 신자들은 자신이 많은 눈물을 흘리는데도 성화의 진전이 없어서 절망합니다. 그 사람의 자기에 대한 관찰이 정확하다면, 그가 흘리는 많은 눈물은 자기 깨어짐, 즉 통회의 경험에서 흘린 눈물이 아니고 상한 마음의 상태에서 흘린 눈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아무리 자주 상하고 많이 상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으로 그의 굳어진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어 놓지는 못합니다.(192~193)

각성한 마음의 경건한 정서와 다시 굳어진 마음의 타락한 정서는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상한 마음의 상태는 오래도록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각성된 마음이라도 즉각적인 마음의 허물어짐이 올 수 있다. 통회하는 마음에는 즉각적인 성령의 붙드심이 있으나 상한 마음은 본질적으로 영혼의 변화가 아니라 정서적 변화에 가깝기 때문에 쉽게 타락의 정서와 손잡을 수 있다.(193)

비유를 하자면 이렇습니다. 딱딱하게 얼어 버린 냉동 식품을 전자 레인지에 잠깐 가열하였다가 꺼내면 식품의 겉은 잘 익어 김이 모락모락 나서 먹음직스럽게 보이지만 막상 그 음식을 깨물면 돌덩이 같은 얼음이 씹히는 것과 같습니다. 그 식품을 다시 밖에 내놓으면 안에 있는 차가운 냉기로 녹았던 겉 부분까지 다시 얼어붙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194)

영혼의 변화에 관한 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영적인 생활에 있어서 경험이 일천할 때에는, 이러한 경험이 곧 영혼의 변화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종교적인 감상적 경험과 참된 영혼의 변화로 말미암는 정서의 쇄신을 혼동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 이러한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진실한 통회의 경험으로 자신이 깨뜨려지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자신의 영적인 깊이를 과신하며 가식에 찬 신앙 생활을 이어가는 신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203)

통회가 자기 깨어짐이라고 할 때 그것은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자기의에 대한 깨어짐이고, 둘째는 죄에 대한 사랑의 깨어짐입니다.(216) 16세기에 영국의 종교개혁을 지지하다가 화형당한 존 브래드포드John Bradford는 자기의 죄를 고백할 때에 자신이 고백하는 죄 때문에 마음이 파산 상태를 느끼기 전까지는 결코 죄의 고백을 끝내지 않았다고 합니다.(224)

어떻게 하면 통회함으로 마음의 부드러움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하여 여러분들의 기억을 돕고자 인체의 부위를 활용하여 네 가지를 제시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가슴을 따뜻하게 하라, 둘째는 머리를 차갑게 하라, 셋째는 허리를 굽히라, 넷째는 무릎을 꿇으라 입니다.(299) 부드러운 마음을 유지하는 길은 크게 세 가지 동사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두려워하라, 둘째는 주의하라, 셋째는 힘쓰라 입니다.(319)

신자의 영성이라는 것은 결국 거룩함을 추구해 오는 과정에서 획득된 영적이고 정신적인 특성입니다. 영성 깊은 신자가 죄를 다루는 태도의 특징은 두려움과 주의 깊음입니다.(327) 정사精査란 '신자가 보다 거룩하고 온전한 삶을 살고자 자기의 마음과 행위를 살피고, 그것들의 결과에 대하여 성경의 진리의 빛으로 심사숙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삶을 살고자 하는 신자들은 항상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는 일뿐 아니라 자기를 돌아보는 일을 힘썼습니다.(346)
by bluemoses | 2016/09/23 17:38 | 트랙백 | 핑백(1)
다치바나 다카시,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 청어람미디어, 2012.
"암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그렇게 오랜 세월에 걸쳐 방대하게 축적되어 왔는데도, 왜 암을 극복하는 길은 전혀 보이지 않는 겁니까?" 와인버거 박사는 거대한 경로 지도를 보여주면서 명쾌하게 설명했습니다. 암이 생겨나는 세포의 세계는 상상 이상으로 복잡해서 무수한 생명분자가 서로 뒤얽힌 상태에서 신호를 주고받습니다. 그것은 차라리 하나의 우주라고 해도 좋을 만큼 복잡한 세계라서, 그 전모는 아직도 밝혀내지 못하고(그래서 암 세계를 여전히 잘 모르는 것이다) 있습니다. 그리고 복잡기괴한 경로 지도가 해명되면서 비로소 암유전자의 어떤 기능이 세포 증식을 멈추지 않게 하는지도 해명됐습니다. 항암제의 기능과 나아가 항암제는 왜 금방 약효가 떨어지는지(우회로가 생기고 만다)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곧 새로운 유형의 항암제(분자표적약)는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도 알게 될 거라고 했습니다.(54)

NHK스페셜에서 와인버거 박사의 패스웨이 지도를 입체적인 CG로 표현하여 다양한 생체신호분자가 서로 교차하며 오가는 모습을 보여주어 암세포가 살아가는 세계가 거의 하나의 우주와 같은 복잡한 세계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대목은 프로그램에서 가장 힘주어 표현한 장면이었고, 가장 전하고 싶었던 내용입니다. 암이 살아가는 세계를 그런 이미지로 포착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암 세계를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느냐의 여부를 결정짓습니다. ... 방송에서도 분자표적약에 대한 설명으로 "분자표적약은 패스웨이의 입구나 마디를 막습니다. 그래서 패스웨이의 스위치를 누루는 물질이 결합하는 것을 막는 겁니다"라는 내레이션이 나옵니다. 이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방송에서는 생체 속을 오가는 신호를 패스웨이 지도에 마치 신경계를 달리는 전기 신호처럼 표현했지만,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실제 과정은 세포들이 전부 잠겨 있는 세포간액이라는 풀Pool 속에서 일어납니다. 거기에는 무수한 생체 신호 물질이 분자 형태로 떠 있습니다. 그것은 작은 단백질 조각인데, 일반적으로 '인자'라 불리는 분자량이 작은 조각입니다. 세포 표면에는 수용체(리셉터Receptor)라 불리는 단백질 조각이 세포막에 절반쯤 묻힌 형태로 머리를 내밀고 있습니다. 세포간액 속에 있는 신호 분자는 굉장한 기세로 끊임없이 열운동을 하므로 세포막에 수없이 부딪힙니다. 신호 분자와 수용체는 열쇠와 열쇠 구멍의 관계여서, 구멍에 꼭 맞는 상대가 오면 즉시 찰칵, 하고 결합합니다. 열쇠가 열쇠 구멍에 결합되면 즉시 생체 신호가 세포 속으로 흘러가 일련의 연쇄 반응이 일어납니다. 생체 속에서 일어나는 생화학 현상의 기본은 '인자와 그 수용체'가 열쇠와 열쇠 구멍처럼 결합함으로써, 일련의 생화화적 연쇄반응에 스위치를 켜는 현상에 있습니다. 패스웨이 지도에 나오는 패스웨이 한 가닥 한 가닥에 열쇠와 열쇠 구멍이라는 스위치가 여러 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열쇠와 열쇠 구멍들이 전부 정밀한 1대1 대응의 관계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부작용 문제는 일어나지 않지만, 열쇠 하나에 두 개 이상의 열쇠 구멍이 열린다면(혹은 둘 이상의 열쇠로 열리는 열쇠 구멍이라면),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겠지요. 실제로 그렇습니다. 복수의 열쇠 구멍에 맞는 열쇠도 있고 여러 열쇠에 열리는 열쇠 구멍도 있으므로, 분자표적약 분야에서 생각지 못한 부작용이 일어납니다. 이를 다양한 과정을 통해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손발이 저리다거나 발진이 나타나거나 하는 정도의 부작용이라면 그나마 좋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부작용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150~153)
by bluemoses | 2016/08/26 13:47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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