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하우어워스, 한나의 아이, IVP, 2016.
<우주의 결에 따라>에서 나는 바르트가 기독교적 확신의 묵시론적 성격을 회복한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할 수 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것은 '세상의 모습에 대한 우리의 기술(記述)'이 '세상을 올바르게 기술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와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합리적으로 인정한 것이었다. 바르트는 신학적 진술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을 구성해야 할 기본 문법,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근거한 문법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되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제공해 주었다.(471)

그가 평화의 사람이었던 것은, 우리 감리교도들의 표현을 쓰자면 성화(聖化)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성화가 가리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세상을 구속하셨다는 확신으로 빚어진 습관들’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는군요.(490)
by bluemoses | 2016/10/30 23:09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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