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엽, 「지구적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교육개혁의 길」, 『창작과비평』, 2016 가을호, 96~121쪽.

우리는 매순간 현재를 살아가지만, 과거는 경험을 통해, 미래는 기대를 매개해서 현재로 스며든다. 현재는 경험과 기대가 교차하는 순간인 것이다. 경험과 기대는 서로를 조건짓지만 둘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만일 경험이 기대를 완전히 결정하면다면, 미래는 닫힌 것이 되며, 그 경우 삶은 권태의 지속 또는 탈출구 없는 지옥이 될 것이다. 반대로 미래가 너무 개방적이어서 경험으로부터 어떤 기대도 끌어낼 수 없다면, 우리는 불안에 빠질 것이다. 그러므로 경험과 기대가 빈틈없이 결속된 상태나 아무 연계 없이 분리된 상태는 좋은 삶의 조건이라 할 수 없다. 경험과 기대라는 켤레 개념으로 우리 사회를 조망하면, 한때는 경험과 기대가 발전주의 프로젝트를 통해 적절히 연계되었지만, 그 잠재력은 이제 소진되었다. 하지만 경험과 기대를 연계할 새로운 집합적 프로젝트는 형성되지 않았다. 그 결과 지금 우리는 경험/기대 연관의 붕괴 상황에 있다는 느낌과, 경험과 기대가 간극 없이 봉합된 상황을 동시에 체험하고 있다.(96~97)

이글에서는 현재 우리사회가 처한 문제를 세계체제론의 일환으로 발전된 세계도시이론에 입각해 분석해보고자 한다. 그런 구상에서 매우 중요한 거멀못이 교육이라는 것이 이 글의 판단이다. 따라서 그런 판단에 입각해 공간적인 재편을 염두에 둔 교육개혁론을 제기해볼 것이다.(98)

만약 어떤 도시가 세계적 규모의 자본축적 중심지, 즉 세계도시의 역할을 한다면, 어떤 기업들이 집결할지 추론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다국적 생산자본의 헤드쿼터가 자리잡을 것이고, 생산자본을 지원할 분 아니라 다양한 축적 메커니즘을 가동하는 대형 금융회사가 모일 것이다. 그리고 이들 모두를 지원하는 생산자 서비스 회사(대규모 회계법인, 부동산회사, 국제적 로펌, 디자인과 광고 전문 회사, 시스템 솔루션을 제공하는 전산서비스 회사 등)가 응집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고용된 인구를 지원하는 소비자 서비스 제공업체(거주용 아파트와 사무 빌딩 관리회사, 그리고 세탁소, 주차관리원, 식당, 택배회사, 버스회사, 자영업 택시 등에 이르기까지)가 모여들 것이다. 만일 대형 금융과 산업적 헤드쿼터가 높은 이윤율을 가진다면, 그것을 운영하거나 소유한 전 지구적 부르주아와 그들을 지원하는 테크노크라트를 위해 도시는 높은 수준의 의료 및 교육 시설을 구비할 것이며, 그 옆에 대학과 연구소는 물론이고 극장과 박물관도 들어설 것이다. 그런 시설에 연구자와 학생, 악단과 무용단이 모이고, 거리의 악사와 초상화가도 따라붙을 것이다. 보헤미안적 생활양식을 가진 예술가 거주지역도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집단 틈새엔 단순 노무인력이 끼어 활동할 것이다. 이런 과정은 브로델(F. Braudel)이 말한 전망의 상호성”, 그러니까 상대편이 자신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기대의 상호성에 힘입어 자기조직적으로 진행된다. 그렇게 해서 역시 브로델이 말했듯이 도시는 일종의 변압기처럼 작동한다. 주변으로부터 필요한 자원을 빨아들이며 내부를 엄청난 에너지로 충전하는 것이다.(99~100)

회계법인과 은행업의 분포를 중심으로 세계도시를 분석해온 피터 테일러(Peter J. Taylor)는 우리의 경험에 부합하게도 서울을 베타-세계도시’(β-World City), 즉 중위 세계도시로 분류한다. 중위 세계도시가 소재한 국가의 경우, 산업적금융적 능력의 한계 때문에 한 개 정도의 세계도시만이 형성 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럴 때도 그 국가의 정치적 수도와 결합함으로써만 세계도시의 수준에 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마 멕시코시티, 부에노스아이레스, 방콕 또는 이스탄불이 서울과 유사한 경우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중위 세계도시는 수위 세계도시와 다른 특징을 지닌다. 중위 세계도시는 중심부 세계도시와 달리 그곳이 속한 국가의 다른 도시들을 완전히 압도한다. 일반적으로 세계도시로의 성장은 국가의 재정능력을 초과하는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편이지만, 중위 세계도시는 거기서 더 나아가 해당 국가 주변부의 자원을 대량으로 흡수하고 착취하며, 그런 한에서 세계도시 지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과 수도권이 나머지 지역으로부터 한해 정부 총 예산의 두 배가 훌쩍 넘는 액수인 약 854조원을 빨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100~101)

중앙정부의 고위 공무원이 퇴직 후 재벌 대기업이나 로펌의 자문 내지 고문 같은 직책으로 취업하고, 그들이 나중에 정부의 선출직 공무원이 되기도 하는 일종의 회전문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중앙정부의 관료들이 국민국가적 충성심을 가지지 않고 관료적 자기이익 추구라는 경로를 따라 상층 지배 블록과 융합하게 되면, 국민국가는 국민적 국가이기를 그치게 되는 것이다. (중략)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민국가가 국민적이기를 요구하는 일, 모든 주민을 동등하게 대우하고 그들의 복지를 균등하게 향상시키려는 가치 지향성을 정부 안에 깊이 새겨 넣는 일이다.(103~105)

지금 우리가 목표로 삼은 바 중위 세계도시 서울의 지배력이 야기한 병리현상의 치유를 위해서도 서울과 수도권의 중심성을 약화시키려 했던 그간의 시도와 그 성과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선 검토되어야 할 것은 참여정부가 추진한 지역균형발전 전략, 특히 그 기획의 중심에 있던 수도이전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공공기관의 지방이전, 그리고 행정수도세종시를 결과로 남겼다. 수도권 중심성 해체를 목표로 내세우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것의 상당한 약화를 함축한 기존의 시도로서 국립대학통합네트워크안이 있다. 이 논의는 참여정부와 연계된 것은 아니었지만 참여정부 시기에 제기되었다. 강준만의 서울대의 나라(개마고원 1996)가 출간된 이후 학벌주의와 대학서열체제에 대한 비판이 활성화되었고, 진보적인 학자들은 서울대 해체와 대학평준화를 주장했으며, 장회익 교수를 비롯한 서울대 교수 20인은 서울대 학부과정 개방안을 내놓기도 했는데, 국립대학 통합안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가다듬어진 것이었다. 이 안은 비록 제도적 결과를 만들진 못했지만 진보정당들은 물론 18대 대선을 앞두고 통합민주당이 교육개혁 방안으로 진지하게 검토하기도 했으며, 여전히 우리 사회 진보개혁진영이 대학서열주의에 도전하며 내놓은 안 가운데 가장 구체성이 높은 것으로 남아있다. 이 글에서 논의하고 싶은 것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제기되고 별도로 추진되었던 참여정부의 수도이전 프로젝트과 국립대학통합안의 결합이다.(108)

참여정부가 시도한 새로운 수도 건설은 당시 야당인 새누리당의 반대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기이한 판결로 인해 행정수도로 격하되었고, 이명박정부는 그마저 특별경제도시로 전환하려 했다. 하지만 당시 박근혜 의원의 대선전략 때문에 행정도시안이 유지되어 922청이 내려가 현재 상태에 이르렀다. (중략) 세종시는 인근에 큰 규모 대학을 품은 세 개의 도시에 둘러싸여 있다. 동쪽으로는 충북대가 위치한 청주시가 있고, 서쪽으로는 공주대의 공주시, 남쪽으로는 충남대와 카이스트가 있는 대전광역시가 있다. 세종시는 이 세 개 도시를 연결하는 허브가 될 만한 위치에 있다. 그리고 청주시는 춘천, 원주, 강릉 소재 대학을 연결하고, 공주시는 전주와 광주, 그리고 목포 소재 대학을 조직하고, 대전광역시는 충남 지역과 경상남북도의 대학을 연계하는 세 개의 2차 허브가 될 수 있다. 강원도 방면의 네트워크를 위해서는 동서 철도망을 보충해야겠지만, 세종시가 중심이 되는 네트워크의 공간적 마찰계수는 그리 높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실제적인 인적 교류가 활성화될 수 있는 것이다. 세종시에 국립대학통합네트워크 본부를 설치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구성해나가는 것은 세종시 자체의 발전방향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런 프로젝트가 의도하는 바는 서울을 핵으로 하는 중심/주변 분화가 야기하는 많은 병리현상을 비수도권을 대변하는 또 다른 중심을 형성함으로써 완화하는 것이다. 이런 의도에 대해 또 다른 중심의 형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중심이 모든 사회적 자원을 빨아들이는 동심원적 사회보다 이심(二心)에 의해 그려지는 타원의 사회가 훨씬 더 역동적일 것이다. 실제로 고등교육의 발전 측면에서 볼 때, 이런 정도의 공간적 응집력 그리고 행정수도에 의해 뒷받침되는 사회적 권력을 가진 국립대학통합네트워크여야 서울 소재 명문대학이 긴장할만한 교육과 연구 역량을 형성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우리는 서울대를 폐지하거나 서울 소재 명문대학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서열 체제에 안주할 수 없게 할 수 있을 텐데, 그것은 결코 서울과 수도권의 약화가 아니라 여러 수준에서 건강을 회복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109~114)

아마도 일각에서는 지금까지의 논의 전반에 대해 더 중요한 당면문제, 그러니까 출산력 저하로 인한 학령인구 급감이라는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대학구조조정 문제를 비껴가고 있다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남아도는 대학정원이 16만명이니 정원 1천명까지 대학 100개가 문을 닫을 일이라는 식으로 조장된 위기는 전형적인 가짜 사건’(pseudo event)이다. 학령인구의 감소가 그렇게 심각한 문제였다면 그들이 대학 입학연령에 이르기 전까지 이미 유치원과 초중등학교가 초토화되었어야 마땅하다.(115~116)

교육에서 벌어지는 일을 데이비드 하비가 말한 공간적 해결의 기능적 등가물로 여겨질 수 있다. 하비는 잉여가치를 추구하는 자본가가 쉬지 않고 생산한 잉여생산물을 흡수하기 위해 자본주의가 공간적 해결을 추구해왔다고 말한다. 이런 공간적 해결의 대표적인 사례로 그는 19세기 중반 오스만(G. Haussmann) 남작의 빠리 대개조, 20세기 중반 로버트 모지스(Robert Moses)의 뉴욕 대도시권 재개발 그리고 엄청난 생태적 문제를 함축하고 있는 21세기 중국의 대규모 도시개발사업을 제시한다. 아마 우리 사회의 경험으로 말하면 22조원을 퍼부은 4대강사업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이 팽창되는 과정도 잉여 자본과 노동을 흡수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공간적 해결에 빗대어 이런 과정을 교육적 해결(Educational fix)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118)

하비는 헤겔의 용어를 빌려 공간적 해결에 입각한 자본축적이 일종의 악무한’(bad infinity)의 성격을 띤다고 말한다. 자본의 확대재생산과 복률성장은 인간의 삶 전체를 통제불능 상태로 몰아가고 생태학적으로 재앙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선무한’(good infinity)에 입각한 단순재생산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120)

산업과 교육을 타이트하게 결합하려는 모든 시도는 뻔하지 않은 기계(non-trivial machine)인 인간을 뻔하게 만들려는 것일 뿐이다. 만일 산업과 교육의 연계를 헐겁게 유지하는 편이 산업에도 더 낫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깨닫는다면, 평가와 선발의 지옥은 한결 연옥에 가까운 것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121)

by bluemoses | 2016/12/19 16:25 | 트랙백
트랙백 주소 : http://dergeist.egloos.com/tb/306385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