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k Davies(2000), 이병곤(역), 《위기의 학교 The School Report》, 우리교육, 2007.
지난해(1999년) 《가디언》은 교육기준청이 주관하는 학력 평가에서 수많은 학교들이 부정행위를 했다고 보도했다. (중략) 표준 성취도 검사는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학교 간 성적 순위표를 작성할 때 원천이 되는 자료이다. 비록 이 검사 점수가 학교의 정확한 학력 수준이나 실태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장차 입학을 지원하는 학생 수와 학교 재정 지원금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학교의 성공 여부를 가름하는 주요 지표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여기에 블런켓 장관이 2002년까지,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11세 학생들의 성취도 비율이 원래 교육과정 목표치인 '수준4'의 영어 80퍼센트, 수학 75퍼센트에 이르지 못하면 장관직을 사임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이 같은 압력은 더욱 강화되었다.(228~229)

마치 육상 선수들 사이에 존재하는 스테로이드처럼, 이 같은 부정행위는 학교 현장에 만연되어 있다. 만약 어떤 교사가 부정한 방법으로 성적을 높였다면, 정직한 다른 교사는 더없이 무능해 보일 것이고, 교육부의 새로운 노선을 따라야 한다는 압력을 전보다 더 많이 받게 된다. 경찰 역시 내무부의 압력 때문에 비슷한 열병을 앓아 왔다. 지난 1999년 《가디언》과 《채널 4》의 심층 보도 프로그램인 <디스패치 Dispatches>가 폭로한 바와 같이, 전국 43개 지역 경찰청 가운데 범죄 발생률과 검거율을 조작하지 않은 곳은 단 4곳뿐이었다. … 수치를 조작해서 이득을 얻고 있는 다른 지역 경찰청과 경쟁해야 한다는 압력은 거의 불가항력이었다.(235)

우리 교육 체제에서 유급제도의 부재와 상대평가의 결합은, 단순히 학업 실패를 방치하는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학업 실패를 조장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구조적으로 학업 실패를 양산해낼 수밖에 없는 교육 체제를 만들어 관리해 오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한 채, 도리어 학업 실패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 결과 이 같은 구조적인 결함이 만들어 낸 학업 실패로 인해, 아이들만 정서적으로 상처를 받고 진로에서의 좌절을 맛보고 있다.(264~265)

네덜란드에 있는 초등학교에서는 모든 학생들에게 기본 단위의 교육 예산을 지급하지만, 부모의 교육 수준이 낮은 가정의 자녀들에게는 기본 단위의 1.25배를 지급한다. 또 선원의 자녀는 1.4배, 이민자나 부랑자의 자녀들은 1.7배, 교육을 받지 못한 소수 인종의 자녀들은 기본 단위의 1.9배를 받는다. 여기에는 지역 차이도, 시스템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예외도 없다. 이것이 교육 예산의 핵심을 이룬다. 이에 더하여 중등학교에서는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보다 직업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학생들에게 더 많은 교육비를 지원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실습실을 청소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이다. 네덜란드의 전형적인 중등학교에서는 직업교육을 받는 학생에게 135만 원의 교육비를 투자하는 반면,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에게는 많아야 40만 원 정도의 교육비만 지원하고 있다. 우파들은 필요에 따른 재정 지원 방식을 혐오한다. 그런 정책은 한 개인의 학업 실패를 공적 자급으로 보상하는 것이며, 나아가 공부를 잘하는 중산층 아이들에게 쏟아 부어야 할 돈을 가난한 아이들에게 퍼 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덜란드 사람들은 협상을 통해 그런 정치적인 격랑을 헤쳐 왔고, 이제 교육 소외가 세대를 거듭하며 세습되는 현상을 극복했다는 실질적인 증거를 보여 주고 있다. 네덜란드 교육부 장관의 발표에 따르면, 부모의 교육 수준이 낮아 기본 단위의 1.25배의 재정을 지원받은 수혜 대상자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265~266)

감히 드러내 놓고 말하기조차 망설였던 하나의 도전적인 생각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선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자는 말이다. 영국 교육에서 선발을 통한 진학 시스템은 하나의 악몽과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국의 어린 학생들은 열한 살 때 치르는 단 한 번의 시험 결과로 중등학교에 배정되었고, 일단 진학할 학교가 정해지면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는 가능성조차 거의 없었다. 또한 이는 가장 성적이 뛰어난 아이들에게만 충분한 자원이 공급되는 불공평한 체계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계급 정치에 의해 엉망이 되었고, 그 결과 이류 학교라는 덫에 걸려든 아이들은 빈곤 계층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네덜란드 교육 체제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영국에서 엘리트주의와 동의어로 취급되는 바로 그 선발 제도를 통해 엘리트주의에 빠지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는 점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선발이라는 제도는 사회 정의를 위한 의식적인 실천이었다. 선발 제도가 평등한 교육 기회를 부여한다는 위장된 역설을 통해 네덜란드인들은 완벽하지 않지만 원칙상 받아들여질 만한 나름의 방식을 고민했던 것이다. 실제로 그들이 실행해 온 선발 체제는 학습자들의 필요에 근거한 교육을 제공한다는 그들 시스템의 논리적 결과물이다. 직업 교육과정을 선택한 네덜란드 학생들은 전체 수업 시간의 절반 이상을 실습 과목에 열중한다. 이 점에서 대학입시 준비 과정에 있는 학생들과 구분된다. 그런데 시간표의 나머지를 이루는 지식 교과에서도 그들은 대학입시 준비 과정에 있는 학생들과 다른 수업을 받는다. 직업교육을 선택한 학생들이 성적이 뛰어난 대학입시 준비 과정에 있는 학생들을 위해 그저 들러리 서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맞는 학습 속도로 학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학업 능력에 차이가 있는 학생들은 교육받는 경로가 분리된 상태로, 같은 학교 안에 공존한다. 여기서 문제는 이 체제가 영국에서처럼 자의적이고 융통성 없이 이류 학교를 양산해 내는 선발 체제로 다시 귀결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 질문에 대해 먼저 답하면, 네덜란드인들은 이 문제를 거의 완벽하게 해결했다. 모든 네덜란드 어린이들은 선발을 거치지 않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1년 정도 유급된다. 이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시험을 보는데, 이 시험은 과거 영국에서 실시한 일레븐 플러스 시험에 비해 훨씬 정교하다. 지능과 학업 성취도를 측정한 뒤 교사들은 문서로 된 평가서를 작성하는데 이때 충분한 토론이 이루어진다. 그런 다음 교장은 학부모와 면담을 하고, 중등학교에 보낼 추천서를 작성해준다. 아이들이 중등학교에 진학하면 4가지 경로에 따라 공부하는 과정이 나뉜다. 이 아이들은 모두 같은 교재로 15개 교과를 공부하는데, 다만 학습 수준과 속도에 따라 4가지 경로로 나뉜 것이다. 각 과정은 2년간 지속되는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 내린 평가가 잘못된 것으로 그러나면 학년 말에 다른 과정으로 전환시켜 준다는 점이다. 이때 25퍼센트에 가까운 학생들이 과정을 바꾼다. 2년 뒤, 4개 과정은 다시 서로 다른 교육과정으로 세분화된다. 15퍼센트의 학생들은 가장 학습량이 많은 4년제 인문 교육과정으로 편성된다. 25퍼센트의 학생들은 학습량이 약간 적은 3년제 과정을 이수한다. 45퍼센트의 학생들은 일부 실용적인 직업 훈련이 포함된 2년제 인문 교육과정에 편입되며, 나머지 15퍼센트는 일부 인문 교과가 포함된 2년제 직업 교육과정에서 공부한다. 이 체제의 유연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요소는, 학생들이 위의 4가지 경로 가운데 직업 교육과정을 마치고 수료증을 받은 뒤에, 본인이 좀 더 학문 중심의 교육과정으로 옮겨서 더 배우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중등학교 과정을 지속할 수 있다는 데 있다. 5퍼센트의 학생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즉, 영국의 낡은 선발 체제는 학생들을 특정한 과정에 붙잡아 두는 반면, 네덜란드에서는 여러 과정 사이를 옮겨 다니도록 권장하고 있다. 네덜란드 학교에서는 학업에 실패한 아이들을 직업 교육과정을 통해 학교에 끌어들여 자기 수준에 맞는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도록 한 다음, 좀 더 높은 수준의 과정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 북동부 그루트브뢰그 지역에 자리한 마르티누스 칼리지 교장 J. J. 몰리나르 박사는 “이것이 빈곤층 아이들을 이끄는 구조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중요한 통계 하나를 살펴보자. 가장 학력이 떨어지던 학생들의 94퍼센트가 직업 교육과정을 마치고, 수료증을 받기 위한 6개 교과 시험에 합격했으며, 이 가운데 일부는 인문 교과였다. 영국의 놀라운 실패율과 비교해보자. 이런 결과는 시험 문제가 쉬워서 얻어진 것이 아니다. 화장실에 배선을 놓는 일은 라틴어를 익히는 일보다 결코 쉽지 않다. 윔 메이즈넌 교수는 “네덜란드에는 숨은 재능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선발 체제가 자의성과 경직성을 극복하더라도, 여전히 교육받는 아이들을 두 계층으로 분리하는 역할을 담당하지는 않을까? … 이러한 낙인 효과를 줄이기 위해 네덜란드 사람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가운데는 문화적인 방법도 있었다. 몰리나르 박사가 들려준 이야기는 상식을 지향하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뛰어난 감수성을 보여 준다. “우리 일생에서 변호사가 필요한 경우는 한두 번뿐입니다. 하지만 빵 만드는 기술자는 날마다 필요하죠.” 또한 이들은 사회적인 방식으로 풀기도 한다. 학교에서 소풍을 가거나 연극을 무대에 올릴 때 서로 다른 과정을 밟는 학생들이 모두 함께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낙인 효과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안은 학습자의 필요에 바탕을 둔 교육 정책에 있다. 즉 직업 교육과정에 더 많은 재정을 지원한 것인데, 이를 통해 직업 교육과정을 밟는 학생들에게 더욱 강한 자기 존중감을 심어 주고 성공을 위한 실질적인 기회를 주며, 그 결과 학부모와 기업체 고용주들 모두가 직업 교육과정을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최근 네덜란드의 교육부 장관은 학력이 가장 낮은 두 과정을 통합하고, 학생이 원할 경우 더 많은 인문 교과를 공부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학생들의 자기 존중감을 더욱 높여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266~269)
by bluemoses | 2017/01/13 12:02 | 트랙백 | 핑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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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에 시작되었으나, 1970년 94%였던 고등학교 물리 이수율이 10%대로 하락한 것은 1994년도의 일이다. 위기는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아마도 &#8220;구조적인 결함이 만들어 낸 학업 실패&#8221;는 지속되리라. 하나 첨언하면, 다치바나 다카시가 를 저술한 시기는 2001년이다. Comments are closed. Archived Entry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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